중국대학 영어수업 학위 취득 과정

'중국에서 취득하는 영국대학 학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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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 반도(山東半島) 중국 산동성 동부에 뻗어 나온 반도로, 길이는 약 350km이고, 최대 너비는 약 130km이다. 황해와 보하이만을 갈라 놓는 반도로 대체로 구릉성 산지가 많고, 남쪽 해안은 따뜻하나 북쪽 해안은 추위가 심하다. 연안은 중국에서 손꼽히는 어장이며,청도,위해 등의 항구가 있다. 농산물로는 밀, 목화, 담배 등이 많이 나고, 석탄, 철 등의 지하 자원도 풍부하다. 산동성은 한반도와 인연이 많은 곳인데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화교의 대부분이 산동성 사람이며 한국인들이 먹는 중국음식 가운데도 산동음식이 많다. 또한 산동성에 있는 태산은 한국인들이 시조를 통해 접했던 지역으로 한 번쯤은 구경할 만한 곳이다. 특히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청도맥주를 원산지에서 맛볼 수 있다.


중국 산동성 청도(칭다오)

동남쪽으로 황해와 접해 있는 산동반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북위 35°36' -37°09', 동경 119。30' - 121。) 청도는 위도상 우리 나라 남부 지방과 비슷하며 시차는 1시간 늦다. 항구도시인 청도는 중국 동부 연해의 중요한 경제 중심 도시이자 오랜 역사와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절경의 관광도시이다. 인구는 대략 690만 정도이며 7개의 구와 5개의 현급시로 구성되어 있다. 청도는 온대 기후에 속하고 연평균 기온은 12.2。C, 연평균 강우량은 775.6mm이며 가장 더운 8월은 평균기온이 25。C, 가장 추은 1월은 평균기온이 1.3。C인 천체적으로 춥지 않고 살기 좋은 기후를 가지고 있다. 하자만 여름에는 물안개가 끼는 날이 많다. 청도는 아름다운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다. 청도의 대문구문화(大文口文化)나 용산문화(龍山文化), 동구문화(洞丘文化)를 통하여 중화민족의 오랜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동주시대( 기원전 770 ~기원전 256년)에는 제국(濟國)의 통치하에 있었고, 그때 당시 산동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인당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당시의 황으로 알려진 태시황(太始皇)은 중국을 통일한 후(기원전 221년) 일찍이 세 번에 걸쳐 지금 청도의 랑아산에 오른 적이 있다고 전해지며, 태(泰)나라의 서보조씨(徐福曺氏)도 함대를 거느리고 랑아사에서 기항하여 동쪽의 고조선(古朝鮮)과 일본에 가기도 했다고 전하여 진다. 한 (漢)나라 때에는 한무제가 지금의 청도시으 불기산 교문궁(不基山 交門宮)에서 제사를 비롯한 제천의식을 행하였다고 한다. 당(唐),송,명,청나라 시기의 도교사원과 암자 등이 청도시 곳곳에 퍼져 있어 문화적 중심지로 청도가 태동해 왔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청도는 청나라 말기 이후부터 번화한 도시로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되었는데 1891년 6월 14일(청무제 17년), 청나라는 주요 병력을 청도로 이동 주둔하게 함으로써 청도는 해양 방위의 요충지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때부터 청도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 되었다. 1897년 11월, 독일이 청도를 강점하여 청도는 독일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당시 독일은 자국의 선교사 두 명이 중국인들에게 살해당한 것을 빌미로 청도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청도를 점령한 독일군의 속셈은 극동지역에 독일 해군의 전진기지를 확보하려는데 있었다. 독일군이 청도에 진주하면서 그 전까지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던 이곳에 현대식 도시가 세워졌다. 항구시설이 갖추어지고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자연히 상업지구가 형성되었다. 독일군으 주둔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청도와 제남을 잇는 철도가 건설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11월에는 일본이 독일 치하의 청도를 차지 하였으나 1920년 중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5.4운동으로 청도를 되찾게 되어 1929년에는 국민당. 정부가 청도를 관할 특별시에 편입시켰다. 1938년 1월 , 일본이 다시 청도를 점령하였으나 1945년 국민당 정부가 디시 이를 차지하여 관리함과 동시에 미국의 해군기지가 되었다. 1949년 6월2일에 이르러서야 청도는 비로서 중국에서 말하는 완전한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처럼 역사는 청도에서 수많은 시련을 주었지만 동시에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국가제도의 각양각색의 건축물을 남겨 놓았다. 20세기 2,30년대의 수많은 저명한 문인들이 청도에 운집해 있었을 정도로 청도는 상해 다음으로가는 유명한 신문학 운동의 도시로서 중국의 신문학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추천대학 유명한 대학으로는 청도대학, 청도해양대학이 있다.

청도의 해수욕장

청도에는 바람 따라 날리는 고운 백사장 따라 넘실 대는 파도 속에 끝없이 펼쳐지는 수많은 해변이 자랑거리 중의 하나이다. 청도도에는 모두 7개의 해변이 있는데 특히 HUIQUAN BATHING BEACHE는 800m의 길이를 자랑하는 청도 최대의 해변이다. 청도시는 중국에서 유명한 해변 휴양지로 그명성이 높은데 그 대표적인 청도시의해수욕장인 제 1해수욕장에는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들로 붐빈다. 특히 공산당 간부의 휴가지로 이용되는 제 3 해수욕장이 최근에야 공개되었지만 아직도 여름이면 해수욕장을 지키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이곳 제 3 해수욕장은 모택동이 집회를 가진 곳으로도 유명하며 장개석도 이곳에서 한달 간 머물렀다고 한다.

제일해수욕장

청도 여행의 매력으로 해수욕을 할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매 년 시즌이 되면 해변은 해수욕객들로 붐비며, 해가 진 뒤에도 서늘한 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들어찬다. 청도에서 청도 맥주를 한 손에 들고 파도소리를 들으면 석양를 즐기는 것도 괜찮은 여행이 될 것이다. 6번 버스가 해수욕장으로 간다.

해산박물관

수족관과 표본진열관으로 나뉘어져 있다.돌고래나 상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수족관이지만 수조의 물이 맑고 깨끗해서 느낌이 좋다 가족나들이로 성황을 이루며 즐거운 분위기를 이룬다. 6번,26번 버스를 타고 중산공원까지 가면 된다.

개방시간 :오전8시 ~ 오후 5시

중산공원

원래는 한마을 이었다니까 여간 넓지 않은 공원이다. 원래는 수목이 울창하고 특히 봄에는 700수나 되는 벚꽃이 아름답다. 동물원이 근처에 있다. 6번버스 이용

영산

시로부터 동쪽으로 40Km가 떨어진 교외에 솟아있다. 바다에 면하고 있으며 단애절벽의 험한 산이다..주봉,영정은 표고, 1,133m 예로부터 중국 유교의 명산의 하나로 꼽으며 [신선이 사는곳]이라 일러왔다.일반 여행은 태청궁까지 버스로 간다. 상청궁, 용담폭포등 도보로 팔수하까지 약 2시간의 등산이다. 팔수하에서 다시 버스에 올라 오후 4시쯤 시내로 돌아온다. 장거리 버스를 이용할 경우 역에서 5번 버스를 타면 장거리 버스터미널로 갈 수 있다. 그밖에도 시내의 주요 호텔에서는 단체 관광버스가 출발하므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시내에서 많이 떨어져 있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생략하는 것이 괜찮을 듯 하다.

청도의 맥주축제

1903년 중국 최초의 맥주가 탄생한 청도 맥주의 명성과 지방 관광 활성화를 위해 1991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열리고 있다. 청도는 독일의 식민지로 오랜세월동안 있었기에 맥주 가공기법이 뛰어나 지역 특산물로 개발하게 된 것이다. 축제기간동안 청도는 매년 30개의 맥주 회사와 50만명의 사람들이 이 축제에 참가하는데 이 축제는 세계적으로 청도를 알리는 계기와 더불어 경제와 무역 증진과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이 축제 기간동안 대규모의 예술 축제와 불꽂놀이, 퍼레이드,그리고 중국 전통 민속 공연,맥주 마시기 경연대회가 개최된다. 청도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맥주 마시기 경연대회가 꼽힐 것이다. 청도의맥주 축제는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티발과 거의 흡사한데 대회 참가자들은 대회 기간 내내 페이팅이나 각종 스포츠를 즐기다가 결전의 날이 다가오면 일렬로 서서 마시기 시합을 한다. 이 경연 대회는 누가 빨리 호흡 조절을 하며 잘마시는가를 평가 기준으로 하며 우승자는 축제기간 최고의 영예를 얻게된다. 맥주축제는 석노인국가여행도기구에서 열리는데 1991년에 결성된 이후 해마다 7월8일부터 2주간 각종 스포츠와 이벤트가 풍성하게 엮어져 청도 여름의 최대 축제라는 명성을 굳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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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동성 제남(지난)

산동성(山東省)의 성도(省都)인 제남은 산동성의 중서부에 위치하면서 정치, 경제, 과학기술, 문화의 중심이자 중요한 교통중심지로 중국 역사문화가 살아숨쉬는 도시이다. 총 인구가 557만명이고, 이 중 절반 이상이 시, 구에 주거하며 56개의 민족 중 38개 민족이 있지만 98%가 중국인이다. 5개의 구와 4개의 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년 강우량은 650~700ml이다. 내륙의 중심지이면서 경제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지이며 주변에는 유명한 보드천샘과 대명손수, 오봉산, 불교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천불산의 만물동, 와우불이 있다. 더욱이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쌀 등이 산동 자랑거리이며 작종 야채생산의 중심지로 수출되는 야채의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추천대학 유명한 대학으로는 청도대학, 청도해양대학이 있다.

대명호(大明湖)

구성의 북쪽에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대명호는 시내의 많은 샘물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시민의 쉼터로 되어 있다. 주위 약 5㎞의 호수에서는 뱃놀이도 가능하고 호반에는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 같은 시인이 술 을 나누며 시를 읊었다고 하는 역하정(歷下亭)과 북겁각(北 閣)이 있고, 구곡정과 창랑정 등도 만들어져 있다. 청나라의 한 시인은 '사면의 연꽃에 삼면의 버들이요, 한성의 산색에 반성의 호수로다' 라고 묘사했으며, 마르코폴로는 '원림 아름다움에 마음 즐겁고 산과 호수의 경치에 눈 쉴 여유 없다' 고 극찬하였다.

훅호천공원(黑虎泉公園)

제남의 샘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며 세 개의 호랑이 머리 모양이 새겨진 샘구멍에서 밤낮으로 물이 뿜어 나온다. 물도 좋지만 주변을 운하처럼 다듬어 가로수를 세우고 아치형 다리를 올려 노젓는 배를 띄운 것이 한 폭의 그림같다. 짧은 거리지만 마치 이탈리아의 수상도시를 지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며 상인의 호객행위가 없어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천불산(天佛山)

제남에서 동남쪽으로 2.5㎞ 거리에 있으며 높이는 284m에 불과하지만 울창한 숲과 화초가 일구어낸 자연미와 정자·누각 등의 인공미가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답다. 천불산이라는 이름은 수나라 때에 산의 암벽에 많은 불상을 새기고 천불사를 세웠기 때문이다. 경내에 있는 '용천동(龍泉洞)'은 명나라 때에 판 것이고 동굴의 조각은 북위시대의 것이다. 산에 올라서면 멀리는 유유하게 흐르는 황하, 가까이는 시가 전체가 바라다 보인다.

황하(黃河)

제남에서 북으로 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황하를 볼 수 있다. 강 양쪽에는 볼 것 없는 제방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지만 그 흐름은 글자 그대로 황색 탁류의 웅대한 경관을 보여 주고 있다. 강둑 사이의 폭은 약 500m 전후이고 아주 많은 곳은 1㎞ 가량이나 된다. 전체 길이 2.4㎞가 되는 황하대교(黃河大橋)가 1982년에 완공되어 강줄기에 걸쳐 있고, 다른 쪽에 부교도 설치되어 있다.


중국 산동성 태산

중국 오 (五岳)의 첫 번째인 태산은 고대 제왕이 봉선의식을 행한 신성한 산이며, 해발 약 1,545m로 산동성 구릉에서도 최고로 높은 산으로 산동성 동부·제남시·태안 등 3개 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부터 천하제일의 산으로 칭송받아 오듯이 자연경 은 물론이고 신앙의 산으로도 추앙받아 왔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돌비석 등의 옛유적과 종묘 등이 있어 볼 만한 것이 많다. 태산은 한국인 눈에 싱거운 산이지도 모르지만 이 산으로 올라가는 동안 역사와 관련된 유적지를 음미한다면 그 역사의 깊 를 느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중국 산동성 위해(웨이하이)

산동반도의 북단에 위치하 이곳은 일찍 위해위(威海衛)라고 했으며 청조 정부의 해군 북대양함대의 군항이 있던 곳으로 알려졌다. 볼거리로는 항구에서 2㎞쯤 앞바다에 떠있는 섬으로 기복이 풍부한 아름다운 풍경으로 알려져 있는 유공도(劉公島)와 시가지 중앙부 내고산(奈 山) 동산 허리에 있는 누각으로 여기에서 보는 세워진 탑인 수회위해위(收回威海衛) 기념탑 등을 들 수 있다.


중국 산동성 연태(옌타이)

중국 산둥성 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황해(黃海)에 인접한 자오둥연해[膠東沿海]의 항구개발 중심도시이다. 보하이만[渤海灣]에 면한 산둥반도 굴지의 양항이며 어항이기도 하다. 연평균기온 11.8℃, 연강수량은 668.1mm이다. 연태는 옛날에 지부라고 불린 곳으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기 200여 년 전의 중국 최초 통일국가인 진의 시황제가 여기서 활시위를 당겨 큰 물고기를 잡은 적이 있는데 이로 인해 이름을 얻은 ‘사어대(射魚臺)’가 아직도 남아 있다. 서기 1398년 명나라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여기서 봉화대를 건립하였는데 이로 인해 '연태'란 이름을 얻었다.

추천대학 유명한 대학으로는 연태대학, 연태사범대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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