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북성(허베이성) 여행
중국 화북(華北)지방 북부에 있는 성으로 면적 20만 km2, 인구는 약 6334만(1994)이다. 성도는 스자좡(석가장)이고, 화북평야 북부에서 네이멍구[內蒙古] 고원 남동부에 걸친 지역을 차지한다. 《서경(書經)》의 <우공편(禹貢篇)>에 나오는 기주(冀州)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성[冀省]이라고도 한다. 청대(淸代)에는 즈리성[直隷省]이라고 불렀고, 신해혁명(辛亥革命) 후 1928년 허베이성이라고 고쳤으며, 공산정권 수립 후 차하얼[察哈爾]·러허[熱河]의 두 지역을 성의 일부에 편입하였다. 한족(漢族) 외에 후이족[回族]·몽골족이 약간 살고 있다. 네이멍구 고원의 일부를 구성하는 장베이[張北] 고원·쉬안화[宣化] 분지·지산[冀山] 산지·타이항[太行] 산지·허베이[河北] 평원의 5개 지형구로 나뉘는데, 옌산[燕山]산맥의 능선 위를 만리장성이 뻗어 있고 그 안팎을 남북 교통로가 통과한다. 동쪽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는 타이항산맥에도 산시성[山西省]에 이르는 타이항 팔경[太行八]이라는 통로가 나있다. 허베이 평원은 화북평야의 일부로, 대부분이 하이허강 수계[海河水系:白河·永定河·大淸河·子牙河·衛河 등]의 유역이다. 이들의 여러 하천은 톈진[天津] 부근에서 합류하여 하이허강이라 부르는데, 대개의 하천들이 황토고원에서 발원하기 때문에 다량의 이토(泥土)가 운반되고, 여름철에 집중호우가 내리면 홍수가 나기 쉬워 관팅[官廳]·미윈[密雲] 등의 다목적댐이 건설되고, 방수로(放水路:馬廠減河·子牙新河 등)를 굴착하는 근본적인 하이허강 치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륙성 기후를 이루어 여름에는 기온이 높아지나 연평균강수량이 500 mm 내외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물을 파서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런민성리거[人民勝利渠]라는 도수로(導水路)를 파서 황허강의 물을 웨이허강[衛河]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농산물은 대부분이 식량작물인데, 밀·수수·조·옥수수 외에 저습지에서 벼를 가꾼다. 상품작물은 목화 생산이 전국 제1이고, 그 밖에 땅콩·참깨·잎담배를 비롯하여, 산록지대에서는 복숭아·사과·포도·대추 등 과수재배가 성하다. 장베이 고원에는 훌륭한 목야지가 많고 해안의 다구[大沽] 부근은 제염의 중심지로 창루염[長蘆鹽]으로 알려진 소금을 산출한다. 광산자원은 옌산산맥·타이항산맥 산록부에 석탄과 철이 매장되어 있는데, 룽옌[龍烟]·우안[武安]의 철, 카이롼[開1]·징싱[井]·펑펑[峰峰]의 탄전이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톈진·탕산[唐山]에 외국 자본으로 운영되는 약간의 공장이 있을 뿐이었으나, 그 후 급격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톈진·탕산의 중화학공업 및 스자좡(기계·면방직)·한단[邯鄲:제철·방직]·바오딩[保定:필름] 등 신흥공업도시의 발전이 뚜렷하다. 도로·내륙수로도 발달하였으며, 톈진은 중국 북부지역 최대의 무역항이자 내륙수운의 집중 지점이다. 장자커우[張家口]는 네이멍구 자치구와의 교역 중심지이다. 청더[承德]와 친황다오[秦皇島]의 베이다이허[北戴河]는 휴양지로서 유명하다. 하북성은 관광지로서 그리 매력적인 곳은 아니지만 꼭 들러볼 만한 곳이 있다.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동쪽의 산해관, 청나라 황제의 피서별장이 있는 승덕 등이 그곳이다. 관련학교 유명한 대학으로는 하북대학, 하북사범대학, 하북의과대학 등이 있다.중국 하북성(허베이성) 석가장
석가장은 북경에서 서남쪽으로 약 28㎞ 떨어진 하북성의 성도이며 90만 인구의 산업도시이다. 주요철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최근에 급격한 발전을 이룬 도시이기 때문에 별다른 특색이 없으며 볼거리도 많지 않다. 석가장에서 45㎞ 떨어진 조현(趙縣)에 있는 안제교(安濟橋)와 삐죽삐죽한 산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 등 절경으로 유명한 창암산(蒼巖山), 동으로 만든 큰 불상이 있는 융흥사(隆興寺) 정도만이 그나마 볼거리이다.중국 하북성(허베이성) 진황도
진황도는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약 300㎞ 거리에 있는 발해(渤海)에 면한 도시이다. 동쪽으로는 산해관을 떠받치고 서쪽으로는 북대하를 누르고 있다고 해서 옛날부터 군사요지로 중요시되던 곳이다. 현재 진황도는 중국에서 가장 활기찬 무역항 가운데 나이지만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이 도시의 동서쪽으로 나란히 북대하(北戴河), 산해관(山海關)이 있어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는 도시가 되었다. 양쪽에 휴양도시를 끼고 있어 교통이 편하고 거리가 깨끗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섬의 래는 진의 시황제가 장성용의 벽돌로 만든 섬이라고 해서 진황도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진황도
완만한 해안선, 송림을 뚫고 들려오는 바람소리, 조용한 물결 등 이와 같은 천연의 자연조건은 이곳을 청조시대부터 정부고관이며 외국공사, 부자들을 위한 고급 요양지로 개발되었으며, 해변에는 700채 남짓의 별장이 세워져 있다. 지금은 서민들도 발걸음을 옮기는 해수욕장이며 일대 요양소가 되었다. 한국에도 낯설지 않은 곳인데 중국의 최고 지도자인 모택동과 등소평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는 장면이 자주 외신으로 들어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