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학 영어수업 학위 취득 과정

'중국에서 취득하는 영국대학 학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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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은 중국 북동부에 있는 성(省)으로, 면적은 18만 7000 km2, 인구는 약 2,500만이며, 약칭은 지(吉)이다. 길림성의 남동부는 북한과 접한다. 지형은 동서로 산지가 있으며, 중앙부가 평원이다. 동부는 창바이(長白) 산지로서 해발고도 1,000 m를 넘으며, 주봉 백두산의 화구호 천지에서 제2쑹화강(松花江)이 흘러나온다. 서부는 다싱안링(大興安嶺)으로서 해발고도는 1,000 m를 넘고, 성내의 최고봉은 라오터우산(老頭山:1,394 m)이다. 중앙부는 둥베이 평원의 일부이며, 북부의 제2쑹화강 유역의 쑹넌(松嫩) 평원과 남부의 랴오허강(遼河) 유역의 랴오허 평원 사이에 완만한 구릉이 있어 분수계를 이룬다. 이 구릉에 이어 평원과 창바이 산지 사이에 500 m 전후의 구릉이 있다. 제2쑹화강은 지린성 제1의 하천으로 넌장강(嫩江)과 합류하며, 상류에는 펑만(豊滿) 댐이 있고 인조호인 쑹화호(湖)가 있다. 남동부 국경에는 두만강(豆滿江:중국명 圖們江)과 압록강(鴨綠江)이 흐른다. 서부의 다싱안링에서 흘러나오는 하천은 넌장강 지류인 타오얼강(兒河)과 랴오허강의 서쪽 줄기인 서(西)랴오허강인데, 제2쑹화강에 비하여 유량이 적고, 물살도 빠르지 않으며, 유역에는 늪과 습지대가 많다. 기후는 전체적으로 겨울철에 한랭건조하며 여름철에 덥고 습윤한 대륙성 기후이다. 강수량은 동부인 창바이 산지에 많고 서쪽으로 갈수록 적어진다. 청(淸) 말의 광서(光緖) 연간에 성제(省制)가 실시된 이후 헤이룽장(黑龍江), 랴오닝(遼寧) 두 성과 함께 둥베이(東北) 3성이라고 하였다. 문화대혁명 후에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의 저리무맹(哲里木盟)과 후룬베이얼맹(呼倫貝爾盟)의 남부가 편입되어 성역(省域)이 넓어졌다. 여름의 고온과 고위도의 특징인 일조시간이 적당하기 때문에 농업생산의 자연조건이 뛰어나다. 옥수수, 수수, 조 등의 밭작물 외에 옌볜(延邊)의 한족(韓族) 자치주, 퉁화(通化), 지린 등에서 벼 농사도 활발하다. 그 밖에 콩, 사탕무, 아마의 산출량도 많다. 삼림은 동부의 창바이 산지와 서부의 다싱안링에 많은데 중국의 주요 임업지대의 하나이다. 목재 외에 왕머루, 목이버섯 등과 모피를 얻는 동물도 많으며, 그 중에 당근, 녹용, 담비털 등은 ‘지린 3보(三寶)’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주요 지하자원으로는 철(通化, 渾江), 석탄(遼源, 通化), 동(天寶山) 등이 풍부하다. 공업으로는 창춘(長春)의 자동차, 철도차량, 트랙터를 중심으로 하는 기계공업, 지린, 쓰핑(四平)의 화학, 둥화의 제철을 중심으로 야금, 화학, 기계, 제지, 제재, 방적, 식품가공 등의 공업이 각지에서 발전한다. 성내를 연결하는 교통은 철도망의 밀도가 높은 것이 특징으로 창빈(長濱:長春∼哈爾濱), 창다(長大:長春∼旅大), 핑치(平齊:四平∼齊齊哈爾), 창투(長圖:長春∼圖們) 등의 간선철도가 달리고 있으며 자동차 노선도 발달하였다.


중국 길림성(지린성) 장춘

동북 3성 중의 하나인 길림성(吉林省)의 성도(省都)는 장춘(長春)으로서 인구가 약 2백 13만 명의 도시미며 면적은 158km2이다.비행기로는 아시아나와 북방항공이 운행을 하는데 2시간에서 2시간 반정도 소요 된다. 장춘은 북위 44。의 내륙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륙성 몬순기후로서 뚜렷한 사계절을 가졌다. 봄,여름,가을은 짧은 편인 반면 겨울은 매우 춥고 길다. 장춘을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은 6월 중순에서 10월사이이나 1월 중순부터 열리는 하얼빈의 빙등축제에 맞추어 길림의 송화강 눈꽃송이도 함께 본다면 상당히 매력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장춘은 해방후 1953년 길림성의 성도로 된 후로 40여년동안 발전하여 길림성의 행정,경제,교통,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장춘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19세기 말엽,러시아가 동청철도(東淸鐵道)부설권을 얻으면서 장춘은 동북지방 교통의 요지로 등장하게 된다. 1905년 러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장춘에 남만주 철도회사를 설립하여 만주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전쟁이 끝난 후 동청철도의 장춘 이남 부분은 일본에 넘어갔으며, 1935년 장춘이북 부분도 만주국에 매각되었다. 만주국(滿州國)은 일본의 군부가 1932년~1945년 사이 중국 동북 지방을 세웠던 괴뢰국가로 장춘에 수도를 정하였다. 이때의 이름이 신경(新京)이다. 1945년 8월 제2차 세계재전이 끝날즈음 민중 반란이 일어나고 관동군도 중국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만주국도 꼭두각시 황제였던 부의가 체포되면서 역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 후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을 거쳐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1956년에는 장춘에 중국 최초로 자동차공장이 세워지면서 장춘이 공업도시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그 후 기계, 화학,전기,유리,식품 가공등의 분야로 확대되면서 장춘은 공업의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장춘은 다른 도시에 비하여 공원과 녹지가 많다.그러나 봄과 여름이 짧은 도시인 까닭에 아름다운 봄이 오래 지속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장춘(長春)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는 유래도 있다. 장춘의 역사는 위에서 살펴본 바로 역사가 비교적 짧다.건물들 가운데는 1930년대 이후에 지어진 것이 많다,따라서 역사적인 유적이나 문화재는 거의 없지만, 반드시 들려 보아야 할 곳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살았던 위황궁이다.

관련학교 유명한 대학으로는 장춘대학, 장춘사범대학, 동북사범대학 등이 있다.

시내교통수단

1.택시: 기본요금은 5원이며 미터제이다.단 기차역 이나 버스 역의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는 타지 말고 조금 걸어 나와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면 된다. 역 앞의 택시를 타면 아마도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2.버스:노선이 다양하며 냉방이 되는 버스와 안되는 버스,미니버스등이 있다. 요금은 버스의 종류와 거리에 따라 다르다.
3.이층버스: 장춘시내의 중심대로인 인민대로만 왕복한다.
4.전차: 버스보다 속도가 느리며 노선이 다양하지 않다. 요금은 거리에 따라 다르며 보통 6각이다.
5.삼륜차:택시보다 가격이 싸고 좁은 편이나 탑승 인원이 적을 경우에 편리하다. 미리 협상을 하고 이용한다.

만주국 황제의 궁성,위황궁

위황궁은 위만주국의 황궁이라는 뜻으로서 부의가 거주하던 곳이다. 원래는 소금 저장소로 쓰였던 곳이라 다른 황제의 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고 협소하다.부의가 일본의 군부에 의해 만주국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 이 작고 허름한 곳을 궁전으로 택한 것은 도청(盜廳)을 두려워하여 일본이 지어준 궁전을 마다했기 때문이다. 궁전은 정무를 보던 집무실이 있는 외정과 일상생활을 하던 내정으로 나뉜다. 외정에는 관공군 사령관과 부의의 회견장면,아편에 찌들은 황후 완용의 밀랍인형이 전시되어 있는 집희루(緝熙樓), 부의의 일생과 업적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서랑방(西廊房), 녹색 돔이 솟아 있는 근민루(勤民樓) 등이 있다. 내정으로 사용하던 동덕전(同德殿)은 지금은 길림성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길림성 박물관

신석기 시대부터 청나라까지의 중국 역사 유뮬이 약 7만4천 첨 가량 시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광개토대왕비의 탁본, 그 외에 고구려 시대의 도자기,백옥으로 만들어진 이배(耳杯),고구려 고분의 벽화 모사도 등이 볼 만하다. 발해의 유물로는 금 혁대와 도자기, 문왕의 딸 이었던 정혜공주와 정효공주 무덤에서 발견된 벽화의 모사도가 눈길을 끈다.실제벽화는 고분을 개방하지 않기 때문에 볼 수가 없다. 길림성 박물관은 위황궁 바로 옆에 위치한다.

장춘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남호공원

남호공원(南湖公園)은 장춘시 최대의 공원으로 거대한 크기의 호수 남호와 넓은 녹지대가 특징이다. 남호는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서 호수 위로 유람선이 떠다닌다.호수를 가로질러 남호대교가 놓여 있으며 수심이 10m가 넘는 곳도 있다. 남호 공원에서 거대한 호수 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공원 곳곳에 걸려 있는 경극 가면들이다. "경극 예술을 진흥하고 민족문화를 가꾸자"라는 문구가 공원 앞에 걸려 있다.

장춘 영화 제작소

장춘 영화 제작소는 중국 최초로 세워진 영화 찰영소이다.중국에는 16개의 영화 제작소가 있는데 장춘 영화제작소만 유일하게 일반인들의 관람이 허용되고 있다. 단 미리 여행사에 신청하여야만 가능하다. 장춘 영화제작소에는 스튜디오 6개를 비롯하여 다양한 세트와 소도구, 의상실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북경 자금성내에 있는 양심전을 실물 그대로 만들어 놓은 세트장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도 여기서 일부분 촬영하였다.그밖에 고궁과 천안문,2백년 전의 북경 골목길등 여러 가지 분위기를 연출한 오픈세트가 실물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중국 길림성(지린성) 길림

길림은 송화강(松花江)을 끼고 있는, 길림성 제 2의 도시로 성도인 장춘에서 동쪽으로 90㎞ 떨어진 곳에 있다. 1907년 이후 길림은 길림성의 성도였으나 1953년 장춘으로 성도가 이전했으며 약 1백 20만 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는 추산되고 있다. 길림이라는 지명은 만주어로 '강변'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길림은 도시로는 이미 30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명(明)·청(淸)이래 동북·중부지방의 정치·경제·교통의 중심지였다. 림은 명승고적이 많으며 다수민족(한족, 회족, 조선족, 만주족 등)이 같이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러 민족의 문화가 섞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화학·전력 산업이 발달한 신흥공업도시로 '화공업의 도시(化工城)'라고도 불린다.

관련학교 유명한 대학으로는 길림대학, 길림사범대학 등이 있다.

송화강(松花江)·송화호(松花湖)

시내를 안으로 굽어 흐르는 송화강은 길림대교 부근부터 전망이 빼어난다. 신기하게도 송화강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대신 수증기가 피어올라 나뭇가지 에 얼어붙어 장관을 이룬다. 매년 정월에는 빙등제가 열려 관광객들이 눈과 얼음의 축제에 발길을 돌릴 줄 모르고 구름같이 몰려든다. 송화호는 송화강을 막은 풍만댐에 의해 생긴 거대한 인공호수로 시내에서 24㎞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호수면의 면적은 약 500㎢이다. 봄에는 흐드 러 게 피는 살구꽃, 여름에는 푸르고 시원한 물, 가을에는 주변 산에 울긋 불긋한 단풍, 겨울에는 흰눈이 하얗게 덮인 산 등 사계절 모두 볼 만하다고 할 수 있다. 호수 가운데에는 '오호도(五虎島)'라 부르는 섬이 있는데, 여 기에서 수영, 뱃놀이, 낚시 등을 즐길 수 있다.

북산공원(北山公園)

길림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북산(北山)의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해 조성된 것으로, 공원에는 동봉, 서봉이라는 두 봉우리가 있다. 두봉우리 사이에는 아취형의 돌다리가 세워져 있으 , 산 정상에는 200여년 전의 고대건축(옥 황각, 곤리궁, 관제육약왕묘) 등이 있으며, 서봉에는 광관정(曠觀亭), 동봉 에는 람월정(攬月亭)이 있다. 이 중에서 람월정은 높이 28m로 동북지역에서 가장 높은 정각으로 그 위에 오르면 길림시의 전경을 조 할 수 있다.

용담산(龍潭山)

길림시 동부에 있는 용담산은 산세가 험하며 고적이 많은 유서깊은 산이 다. 산 위에는 길이 52m, 너비 25m, 깊이 9m의 용담이 있는데 얼룡(孼龍(이 갇혀 있다는 전설이 있는 맑은 연못이다. 산마루에는 기원전 37년 고구려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옛 성터가 남아 있는데 지금도 허물어진 옛 성터의 자취가 또렷이 남아 있다.

길림시박물관(吉林市博物館)

송화강 위의 길림대교를 건너 모택동 동상이 서 는 곳이 박물관으로, 이곳에는 세계 최대 규모인 1천 7백 70㎏의 운석이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도 공룡화석, 동물표본도 전시되어 있으며, 역사 진열실에는 석기시대의 유물 과 고구려 산성도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도 우표를 전시하고 또 판매하기 도 한다.


중국 길림성(지린성) 연길

동북지방의 길림성 동부에 있는 길림은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주도로서 인구는 약 30만으로 그 가운데 조선족이 59.6%, 한족이 38.8%, 그밖에 만주족·회족·몽고족 등 10개의 소수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시 전체의 면적은 747.4㎢이지만 도심만 따진다면 18.6㎢에 지나지 않는다. 연길은 인구비례에 의한 소비가 중국에서 첫손 꼽히며 택시 보유 1인당 배당률도 중국 제 2위라고 할 정도로 소비도시이자 문화도시이다. 또한 4개의 예술단체와 1개의 자체 방송국이 있는데 연변방송국은 중국의 다른 소수민족에게는 없는 유일한 소수민족 자치방송국이라 조선족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연길에는 여행객을 끌만한 이름난 명승고적은 거의 없지만, 연변에 사는 친척을 방문하거나 사업차 찾아가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개는 백두산 관광을 위한 경유지로 들르게 되는 곳이다. 그리고 연길은 조선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사람이 관광하기에는 매우 수월하지만 거리구조나 교통수단은 다분히 중국적이다.

용정

연길에서 버스를 타고 40분을 달리면 해란강이 흐르는 용정에 닿을 수 있다. 이 곳은 한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민족시인으로 알려진 윤동주가 중학교를 이곳에서 다녔고, 박경리의 대하소설인 토지(土地)에 나오는 배경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용정은 1백년 전에 개척되기 시작했는데, 1980년 초까지는 황량한 원시림지대로 해란강 유역에 아름다리 나무가 울창했고 갈대와 가시덤불이 그득했며 온갖 맹수가 살았다고 한다. 1883년 봄, 함경도 회령에서 넘어온 조선농민이 처음으로 해란강 유역을 개척해 마을을 일구고 옛우물자리를 찾아 우물을 만들었다. 용정의 민속관에는 한국 교포들의 풍속, 항일의사들의 사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용정중학교는 일본통치시 항일의사들을 배양한 곳으로 교정에 있는 윤동주시인의 시비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새겨져 있다. 이처럼 용정은 한국의 항일역사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곳곳마다 한국 선조의 숨결이 배어 있다.

도문

도문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작은 도시로 연길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이 곳은 분단된 조국의 슬픔을 이국 땅에서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두만강 건너편의 북한 땅이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유람선을 타고 도문강을 따라 가면 북한쪽 강가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과 부녀자들이 강가에서 빨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룡

별로 볼 것이 없지만 근처에 항일격전지의 흔적이 남아 있어 역사적 의미를 갖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념비나 터나 남아 있을 뿐이다. 곳곳에 조선족마을이 있어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다니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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